the house was mainly for king and princess
and it used to be provided for VIP guests as well.
건물은 성종 15년에 건립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1830)의 큰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34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처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겹처마이며 기둥 위에는 이익공의 공포를 짜고 기둥사이에는 두세 개씩의 화반을 놓았다.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로 변형되었다. 외진평주(外陳平柱)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배열하여 퇴량을 걸고 . 대들보(大樑)은 내진고주 사이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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